작가는 수년 전부터 다양한 한지의 물성과 오로지 블루의 번짐, 대비, 빈 공간 혹은 여백, 하모니, 섬세한 흐름, 얼룩 효과만을 가지고 새로운 추상회화의 영역에 도전하는 매우 대단한 실험을 행해오고 있다. 이러한 실험은 십여 년 전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한국화의 주 소재인 먹을 가지고 실험하던 연장선상에서 전개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블루의 효과에 크게 매료되어 많은 작품들을 제작한 결과, 최근에는 그 결실을 담고 있는 수작들이 탄생되고 있다. 작가는 이전의 서양회화에서 보여주는 추상표현주의와는 사뭇 다른 특수한 추상회화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것은 서양의 그것들이 세계 제2차 대전 이후의 매우 처절한 시도 속에서 거칠고 남성적인 에너지를 표출하는 것이었다면, 노원희의 시리즈의 경우는 섬세하고 드라마틱한 환상의 세계가 21세기의 한국에서 잉태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미묘한 풍경과도 같은 일루전은 일반적인 추상회화와는 다소 다른 숨은 그림 찾기와도 같은 환상의 드라마의 표출과도 같다. 작가는 이러한 블루의 미묘한 연출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혹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생성되는 무한 탄생의 순열의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창작을 하여 보다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 주된 목표를 두고 있다.

 동서양 회화에서 최근에 블루의 색상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활용한 작가들은 이브 클라인(Eve Klein, 프랑스)을 비롯하여, 김환기, 김춘수 등이 있는데, 이들과 같이 블루를 주된 색상으로 사용하는 노원희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블루의 느낌을 새롭게 조망하여 새로운 미학으로 전개해 나아오고 있는 분명한 표현방식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서양화적인 유화 작업의 표현에서는 (캔버스의 표면 위에 그대로 부착된 물감이) 그 색상을 밖으로 뿜어내는 방식을 통해서 작품이 이루어지지만, 동양의 회화에서는 그 와는 달리 색상이 겹 층의 구조로 이루어진 종이 안에 적셔진 뒤 건조되어 깊게 품어져 있는 상태에서 서서히 색상을 드러낸다는 면에서 매우 다른 제작 방식이 된다. 아울러, 이러한 음의 효과와 더불어, 시리즈의 표면에서는 한지 자체와 색상이 다시 완전한 평면으로 동화되어 한지의 껄끄러운 물성이 잘 드러나지 않게 변환이 이루어져 블루의 특수한 연출만이 남겨지는 가장 평면적인 단순 추상으로 남겨진다. 나아가, 시리즈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점은, 액체상태의 물감의 번짐이나 흘림 효과가 매우 섬세한 여성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을 단순히 여성성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는 것이 불합리하기도 한데, 오히려 그것은 작가가 “우연과 필연의 사이에서 형성된 창작 과정을 통해서 드러난 환상의 세계”라는 어휘로 표현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천체망원경을 통해서 관찰되는 거시세계의 우주를 연출하였다기보다는 현미경을 통해서 관찰된 우주를 표현한 것이라는 표현이 조금 나을 수도 있다. 따라서, 시리즈의 경우는, 동식물의 세포나 아메바와 같은 마이크로의 이미지의 연출과도 같은 섬세한 추상회화라는 표현이 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작품제작의 비밀을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첫째, 작가는 한지 접기를 시도하여 종이와 설정된 바닥의 정교한 만남에 촉각을 세우고, 특수하게 연출된 물감과 물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여기서 작가는 한국화의 전통적인 재료인 아교와 먹, 조개껍질로 만든 호분과 몇 가지의 안료를 주입하여 색채의 드라마를 계획한다. 둘째, 인위적으로 물 조절을 하기 위해서 스프레이로 얼룩효과를 연출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미 구겨진 한지와 물감이 번지고 흘려지는 과정, 그리고 이질적인 소재인 바닥의 (경우에 따라서는 비닐 혹은 옷감과 같은 소재들이) 충돌이 이루어져 새로운 효과가 연출되게 한다. 셋째, 여기에서 적절한 건조와 다시 배접되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예상하지 못했던 음영의 효과와 블루와 화이트의 하모니가 한지에 연출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서양적인 소재인 아크릴 칼라를 보충적으로 활용하여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도록 하여 마침내, 바다의 심층 이미지, 작은 소우주의 계곡 혹은 신비스러운 파라다이스와도 같은 미묘한 일루전이 창출되는 근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마치 카오스의 세계를 통해서 형성되는 구름의 모양, 대양의 생성, 그랜드 캐년과 같은 협곡...... 등 수많은 이미지들이 환상의 세계 속에서 잉태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한지를 접는 과정에서 하나의 시점이 아닌 복합시점 혹은 다시점 (큐비즘의 다시점과는 다소 다른 의미) 효과가 드러나는데,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시리즈에서 개척한 중첩 일루전이라는 새로운 의미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작가는 동양화의 복수시점의 구도를 응용하여 새로운 평면구도를 만들어 내는데, 그것은 물감이 번져 나아가는 방향이나 남겨진 공간, 이질적인 바닥의 효과나 얼룩 등 모든 일이 이루어진 사후 효과를 고려하면서 비롯된 기법이다. 이러한 다시점 구도의 설정은 시리즈에서 더욱 드라마틱한 조화감을 이룩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부드러움과 딱딱함의 상반된 기표를 조화롭게 배치하는 이유는 세상의 이치가 음과 양, 생성과 소멸 등 상반된 성격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일상의 삶에서도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화목하게 살아가자는 행복한 환타지아의 세상을 꿈꾸는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우연과 필연의 사이

박기웅 (전 홍익대 교수, 미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