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내재된 속성으로부터 다시 보게 되는 세계,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이승훈 (미술비평)     

노원희 작가의 작업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면은 수묵의 발묵법을 사용하여 정제되면서도 자유 분방함이 혼재되어 있는 미묘한 느낌의 회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가 그려낸 작업에는 달항아리와 같은 형상이 보이기도 하고 어떠한 대상도 없이 마치 땅 속 지층의 구조나 구름과 같은 비정형적 형상이 여러 겹 겹쳐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그려낸 작업이 구상적이든 추상적이든 그것과 상관없이 작가는 이 모든 것은 자연을 표현하기 위해 작업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언급은 그가 자연의 세세한 형상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갖고 있는 속성 즉 자연으로부터 작가가 감각하게 되었던 것들을 표현하고자 하였던 작가의 평소 작업 태도와 연결된 작업의 방식을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자연의 속성을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 변화하고 순환하는 것, 우연적이고 필연적인 것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실 어떤 구체적 대상을 묘사하여 그려내는 것보다 이처럼 비가시적 속성들에 대해 그려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노원희 작가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적인 면보다는 그 이면에서 자연의 속성을 그려내고자 하였기 때문인지 발묵 기법처럼 표현 방식에 담긴 본질적 의미에서부터 자신의 회화가 자연을 닮아가는 방식을 선택하고자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발묵법이라는 작업 방식은 먹이나 물감을 뿌리듯이 사용하기에 인간의 의도적 행위와 함께 화지 및 그 주변의 상황에 따라 번지는 정도와 화면 효과가 달라지게 될 수 밖에 없다. 의도하지 않은 효과가 뒤섞일 수 밖에 없는 표현 방식이라는 것인데 작가는 아마도 이처럼 의도한 것과 의도하지 않은 것이 공존하는 세계가 바로 자연이라고 보았기에 이를 작업 방식에서도 적용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들이 우연과 필연의 조화인 미적 카오스모스(Chaosmos)를 표현한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혼돈과 질서가 공존하는 공간이 우주이고 자연임을 직관하는 가운데 자신의 작업이 그러한 흐름을 드러낼 수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늘의 구름 같기도 하고 땅 속 지층 같기도 한 그의 작업에는 반복되는 유사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작은 차이들이 돌발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모든 느낌들은 공기나 물과 같은 유체의 흐름처럼 부드럽다. 그러나 그 안에는 수 많은 변화가 느껴지는 강한 에너지가 내포되어 있는 듯 하다. 작가는 이러한 흐름 위에 달항아리와 같은 어떤 구체적 형상을 그려 넣기도 하였는데 그 방식은 네거티브 영역을 채색하여 덮고 포지티브 영역을 배경 그대로 색으로 남기는 방식이었다. 현상적으로 보이는 사물들의 물질 영역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외부의 영역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에너지의 흐름을 포착하여 가시화 하는 방식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노원희 작가는 자연과 우주의 가시적인 현상들은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에너지와 같은 비가시적 영역들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였던 자연이라는 것 역시 우리가 일상에서 봐왔던 것과 달리 가시적 영역 너머의 어떤 흐름과 같은 것이며 그것은 작가의 의도와 함께 의도하지 않은 외부의 힘이 함께 작용할 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혼돈과 질서, 생성과 소멸이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영역이 신비롭게 결합되어 있는 것임을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노원희 작가는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그의 작가노트에서 자연의 풍경은 우리 삶의 은유일 수 있음을 말하면서 이것을 그려내는 작업을 통해 공존과 조화의 세상을 꿈꾸고자 한다고 말한다. 물질의 시대를 살아온 인간은 현상적인 부분에 몰입되기 쉽지만 작가는 그 몰입의 영역을 제거하고 그 너머의 세계를 제시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공존과 조화라는 것은 현상에 몰입되는 것이 아니라 초월하게 되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작가는 작업에서 그러한 세계를 제시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